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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과 月池)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Gyeongju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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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350,042㎡ |
지정(등록)일 | 1963.01.21 |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517 번지 일대 |
시 대 | 통일신라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경주시 등 |
관리자(관리단체) | 경주시 |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서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서쪽 못가의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5개 건물터 중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도면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5건물지붕앙시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5건물지기초평면도/A-A/B-B단면상세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5건물북측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평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측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추녀상세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지붕평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지기초평면도/A-A단면상세도/B-B단면상세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앙시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남측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귀공포입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귀공포앙시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공포상세도2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3건물공포상세도1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건물평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건물지붕평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건물서측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건물북측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건물기초평면도/기초단면상세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5건물귀공포입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5건물귀공포앙시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임해전지 제1.5건물공간상세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안압지 복원공사 64-63-62호안석축및건물지기단부복원입면도
도면_사적 _경주 동궁과 월지_경북 경주 안압지 복원공사 62-61-60건물지기단부복원입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