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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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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 궐내각사

조선시대 많은 관청 중에 임금 가까이 궁 안에 두었던 관청을 궐내각사라 하고, 궁 밖에 두었던 것을 궐외각사라고 합니다.
동궐도를 보면 빈청에서 선정전으로 가는 길 좌우에 많은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들을 인정전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편궐내각사라고 했습니다. 특히 빈청에서 선정전으로 향하는 길 왼쪽에는 대청, 은대 등 언론과 관련된 기관이 있었습니다.
대청은 궁궐 밖에 있는 사헌부와 사간원 관원들이 임금에게 아뢸 일이 있을 때 모여서 대기하던 곳이었습니다.
원래는 따뜻한 온돌방이었는데, 추운 날씨에 모여앉아 임금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자 숙종이 온돌을 없애 버렸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간원과 사헌부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면 서편궐내각사의 홍문관까지 합세하여 대궐 문 앞에 엎드려 몇날며칠 임금의 허락을 기다릴 정도였다고 하니, 언론을 중요시했던 조선시대의 특징이 느껴집니다. 같은 지역에 있던 은대는 승정원의 별칭인데, 임금의 명령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기록하고 관리하던 기관입니다.
이 기록들이 오늘날 승정원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기관입니다.
조선의 행정 부처는 6조라 하여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중심이 되는데, 승정원 장관인 도승지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의 승지가 각각 6조의 일을 맡아 처리했습니다.
임금을 견제하고 왕명의 출납을 관장했던 왼쪽의 궐내각사에 비해 선정전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는 임금의 실생활을 돕는 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궁중 음식 재료를 공급하던 공상청이라든가 내시들이 거처했던 내반원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빈청에서 선정전까지 소나무 몇 그루만 덩그러니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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