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비
하마비(下馬碑):하마비는 조선시대에 종묘나 궁궐 앞에 세워놓은 석비(石碑)입니다. 비에는 말을 타고 가는 자는 반드시 내려야한다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중요한 국가의 제사 시설인 종묘와 왕의 가족이 머무는 궁궐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종묘의 하마비는 종묘 시민공원에 있습니다. 공원이 조선시대에 종묘로 들어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에요. 조선시대에 왕은 조상신에게 성대한 제사를 지내는 종묘제례를 통해 백성들에게 훌륭한 효의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여기서 조선시대의 기본이념이 되었던 효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을 볼 수 있지요. 종묘 제례는 백성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종묘 하마비는 1663년 10월에 세워졌습니다. ※사직:삼국시대부터 시작한 국가제사로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던 장소. 종묘 하마비 : 태종실록 25권, 13년 1월 21일(신축) ‘종묘 및 궐문의 입구에 푯말을 세우다’로 기록됨.
어정
어정(御井):이 우물은 조선의 역대 왕들이 종묘에 올 때마다 마셨다고 하여, 모실 어(御)자를 써서 ‘어정(御井)’이라 불립니다. 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해 인근 사람들은 더운 물이라고 불렸습니다. 우물의 지름은 1.5m이고, 깊이는 약 8m인데, 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했답니다. 이 어정은 신기하게도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하니 옛날 임금들이 마신 우물을 한번 구경해보세요. ※용왕제:물을 다스리는 용왕에게 뱃길과 어민의 무사와 풍어를 비는 제사.
외대문
외대문(外大門) : 외대문(外大門)은 세 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칸은 윗부분에 붉은 나무 화살이 일렬로 꽂혀있어요. 나라에 중요한 장소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지요. 이 홍살이 있는 중앙칸은 평소에는 닫혀져 있고 종묘제사를 지낼 때는 열어둔답니다. 일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문을 열어두어 조상신을 집으로 모시는 것과 같은 방식이지요. 우리 조상들은 사람은 혼백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는데, 사람이 죽은 뒤에 정신을 지배하는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육체를 지배하는 ‘백’은 땅으로 흩어진다고 생각했답니다. 제사를 지낼 때면 이 혼백이 후손들을 보고자 이 문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여겼지요. [주석] 칸 : 한옥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함.
삼도
삼도(三道) : 종묘 정문으로 들어서면 세 곳으로 나뉘어진 길, 삼도를 볼 수 있습니다. 정문에서 바라봤을 때 가운데 높은 길은 조상신이 다니는 신로라 하고, 신로 동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이며, 신로 서쪽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입니다. 일반 신하와 제사를 돕는 사람들은 삼도 옆으로 걸어 다녔지요. 정문부터 시작된 신로는 왕과 왕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정전과 영녕전의 정문까지 이어져 있고, 왕의 길인 어로는 임금이 제사 기간 동안 머무는 어재실로 향해 있습니다.
연지
연지(蓮池) : 종묘 안에는 작은 못인 연지가 세 군데 있습니다. 이 연못은 그 중 하나인 중지입니다. 중지는 네모난 못 가운데에 둥근 모양의 섬이 있는 모양새입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못 가운데에 있는 둥근 섬이 하늘을 뜻하고, 네모난 모양의 못이 땅을 뜻한답니다. 하나는 광화문 앞에 있는 재앙을 막아주는 신성한 짐승 해태처럼, 물의 기운으로 불의 기운을 막아주는 역할이었어요. 실제로 화재가 났을 때도 많은 물을 이용해 불을 끌 수 있었지요.
망묘루
망묘루(望廟樓):외대문을 지나 오른쪽에 가장 처음 보이는 건물의 이름은 망묘루입니다. 망묘루란 ˝종묘를 바라보는 누마루 집˝을 뜻합니다. 누마루는 보통 마루보다 다락처럼 높고, 세면이 개방되어 난간으로 둘러쌓여 있는 마루랍니다.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주 잘 보이는 장소로 난간도 매우 아름답지요. 종묘제사 전날 임금은 아름다운 망묘루에서 선대왕을 추모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에는 임금들이 선대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나 글이나 그림을 새긴 현판이 많이 걸려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요.
공민왕신당
공민왕 신당(恭愍王神堂) : 종묘 망묘루 동쪽에는 고려 31대 공민왕을 모신 공민왕 신당이 있습니다. 공민왕은 고려 말에 원나라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과감히 친원파를 제거하고 개혁정치를 단행한 인물입니다.
집사청
집사청(執事廳) : 집사청은 종묘제례에서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대기하던 곳입니다.
향대청
향대청(香大廳) : 향대청은 제향에서 올리는 향과 축문, 예물을 보관하는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종묘제사가 있을 때는 헌관들이 제사에 참여하기 전에 기다리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은 임금이 직접 제사를 올리는 친향이냐, 그렇지 않은 섭향이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한 명의 제관이 모든 신실에 절을 올려야 해서 나중에는 무릎이 바닥에 너무 많이 부딪혀 피가 고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석] 향 : 혼을 모시기 위해 피우는 것 축문 : 제사 때 신에게 감사를 올리면서 원하는 바를 적은 글 예물 : 제사 때 조상에게 올리는 모시
어재실
어재실(御齋室) : 종묘의 어재실은 왕이 종묘제사 전날 미리 도착하여 제사를 준비하던 곳입니다. 왕은 이곳에서 선조왕들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바로 잡았지요.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임금과 마찬가지로 제사 기간 동안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종묘 제사가 있기 7일 전부터 4일 전까지는 조문과 문병을 가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았으며, 죄인을 처벌하지도 않았습니다. 제사 3일 전부터는 오로지 종묘제사에 관련된 일만 할 수 있었답니다. 재계는 오로지 제사에만 몰입해야 조상신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행해졌습니다.
세자재실
세자재실(世子齋室):세자재실에는 종묘제례 하루 전 왕과 함께 온 세자가 머물렀습니다. 왕과 마찬가지로 종묘제사 시기에 금지된 행위를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오직 조상신에 대한 제사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어목욕청
어목욕청(御沐浴廳) : 어목욕청은 왕이나 세자가 제사 하루 전에 목욕하던 곳이랍니다. 목욕을 통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제사를 준비하였습니다.
판위
판위(版位) : 판위는 종묘 정전과 동문 밖, 그리고 묘정 동북쪽에 특별하게 만든 자리입니다. 종묘제례 중 국왕과 왕세자가 자신의 순서를 준비하던 자리이지요. 국왕의 자리인 전하판위와 세자의 자리인 세자판위가 있습니다. 궁궐에서는 중요 의식이 있을 때만 임시적으로 자리를 만들지만, 종묘는 제사를 위한 공간이었기에 제단이 영구적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찬막단
찬막단(饌幕壇) : 찬막단은 돌로 만든 단입니다. 제사에 쓰일 제사음식을 검사하던 곳이지요. 종묘제례는 국가 제사 중 가장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국왕이 직접 그 준비 과정을 살펴보았답니다. 영조임금 이전에는 제사를 관리하는 제관들이 이 일을 했으나 영조임금 대부터 직접 시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복방
수복방(守僕房) : 정전을 관리하는 수복이 거처하던 건물입니다.
성생위
성생위(省牲位):성생위는 제사에 사용되는 소, 양, 돼지를 검사하는 곳입니다. 종묘제사 전날 왕은 조상신에게 인사를 올린 후에, 이곳에 찾아와 제사에 사용될 소, 돼지, 양의 상태를 살펴보았지요. 원래 종묘제사에서 세 번째로 술을 올리는 종헌관 이하가 검사를 하였으나 영조임금 대부터는 직접 검사하였답니다.
전사청
전사청(典祀廳):전사청 건물은 ˝ㅁ˝자형 모양입니다.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음식을 준비하던 곳으로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구들을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마당에는 제사음식을 장만할 때 사용했던 돌절구 4개와 제사 음식을 조리한 아궁이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제정
제정(祭井) : 제사 음식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던 우물입니다.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물 주변으로 담장을 둘렀지요.
정전 동문
정전(正殿) 동문(東門) : 동문은 왕을 비롯한 종묘대제에 참여한 제관 및 왕실가족과 문무백관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정전
정전(正殿) : 돌아가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정전은 종묘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입니다. 정전은 같은 모양의 신실 19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실 제일 안쪽에는 조상신의 영혼이 깃든 신주가 있고, 그 앞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있으며, 양 옆으로 각 신실을 구분하는 주렴이 달려있습니다. 정전 앞에는 넓은 월대가 조성되었는데 그 한 가운데로 조상신들이 다니는 신로(神路)가 놓여 있습니다. 정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물로는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데 이는 종묘 정전에 영구히 모셔질 ‘불천위’가 된 왕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추가로 건물을 지어서 그렇습니다. 불천위는 왕이 세상을 떠난 후 4대가 지나면 신하들이 왕의 공덕을 평가하여 정하였지요. 종묘 정전에는 열아홉 분의 왕 그리고 서른 분의 왕비까지 총 49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주석] 월대 : 궁궐에서 왕실과 관련된 중요한 건물 앞에 놓인 대. 주렴 : 구슬이나 구슬 모양의 물건을 꿰어 만든 발
정전 남문
정전(正殿) 남문(南門) : 정전으로 통하는 문은 누가 그 문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크기와 모양이 달랐습니다. 남문은 조상신이 출입하는 문으로 신문(神門)이라고도 하는데, 정전으로 통하는 문 중 제일 큽니다. 왕이 다니는 동문이 그 다음으로 크고, 악공과 신하들이 다니는 서문이 제일 작습니다. 조선은 유교를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유교는 조상과 후손, 주인과 하인 등 신분 간의 예절을 중시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건축물로 표현된 것입니다.
공신당
공신당(功臣堂) : 공신당은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임금들의 신주가 모셔진 정전보다 그 신분이 낮아 월대 아래에 위치하지요. 삼년상을 치른 왕의 신주가 정전에 모셔질 때, 후대 신하들이 그 왕을 모셨던 신하들을 평가하였고, 그 중에서 공이 높은 신하가 공신당에 모셔졌습니다. 정전에 모셔진 왕이 불천위가 되면, 그 왕의 공신도 공신당에 영원히 모셔졌답니다. 그러나 왕이 불천위가 되지 못해 영녕전으로 옮겨지면, 그를 모신 공신의 위패도 공신당에서 내와 신하의 후손들에 내려졌습니다. [주석] 불천위 :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 위패 :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의 혼을 대신한다는 상징성을 갖는 나무 조각
칠사당
칠사당(七祀堂):인간의 일생을 보살피는 일곱 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칠사당은 공신당보다 서열이 높기 때문에 서쪽에 위치하지요. 봄에는 사명(司命)과 사호(司戶) 소신에게, 여름에는 사조(司窕) 소신에게, 가을에는 국문(國門)과 공려(公蠣) 소신에게, 겨울에는 국행(國行)과 중류(中霤) 소신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종묘제사 때 세 번째로 조상신에게 술을 올리는 아헌관이 이곳에도 함께 술을 올립니다.
요대(燎臺)
요대(燎臺) : 요대는 제사 의식인 제향이 끝나고 조상에 올린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곳입니다. 정전과 영녕전 모두 건물 서쪽 뒷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전 서문
정전(正殿) 서문(西門):서문은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영녕전
영녕전(永寧殿) : 영녕전은 제사를 지낼 왕의 대수가 지난 조상을 모신 사당으로, 먼 조상 또는 정전에 모시지 않아도 되는 신주를 따로 모시기 위해 만든 건물입니다. 정전에 신주를 모신 지 4대가 지난 후에 후대 신하들로부터 정전에 모셔질 불천위로 모셔지지 못하면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깁니다. 건물은 정전에 비해 작지만 그 모양은 같습니다 [주석] 불천위 : 왕이 정전에 모셔진 후 시간이 지나 5대 후손 왕이 정전에 들어올 때, 5대조 선대왕을 평가하여 정전에 계속 모시기로 결정할 경우 불천위라고 함.
영녕전 악공청
영녕전(永寧殿) 악공청(樂工廳) : 영녕전의 악공청도 정전 악공청과 마찬가지로 악공들이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건축 구조와 양식은 정전 악공청과 같습니다.
정전 악공청
정전(正殿) 악공청(樂工廳) : 정전의 악공청은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제사 때 연주를 준비하며 대기하던 곳입니다 정전과 영녕전 사이의 숲 속에 위치하지요. 현재의 건물은 여러 차례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종묘 제사에는 왜 악이 사용되었을까요? 조선에서는 예절과 음악에 의한 정치를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서로의 차이에 따른 예를 엄격히 지키면서, 딱딱한 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악으로 다스려 조화로움을 찾았던 것이지요. 종묘제례악의 순서는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연결되어 있는데요. 처음에는 조선을 개국하는 과정, 그 이후에는 선대왕의 올바른 정치를 칭송하는 내용, 그 이후에는 조상으로부터 복을 내려 받기를 기도하는 후손들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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