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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보인과 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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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의 관리

어보는 종묘의 사직을 이어간다는 상징적인 인장으로 사후에 존호· 시호· 휘호 등을 새겨 종묘에 보관한다. 옥새는 보통(寶筒)에 넣어 보갑(寶匣)에 보관한다. 인장은 인갑(印匣)에 넣어 인뒤옹(인궤)에 용도와 종류별로 보관한다. 그리고 인뒤옹은 인가(印家)에 보관하고, 인가는 인신관(印信官)이 직접 관리한다. 특히 각종의 부정부패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전곡출납의 경우 봉사인(奉使印)을 사용하여 전곡을 출납하였다. 전곡의 출납 후에 봉사인은 환수하여 호조에서 직접관리 하였다. 관인을 위조하는 경우 위조관율(僞造關律)에 의하여 인신을 위조한 율(律)로 극형으로 엄벌하였다.

보인의 주조

어보의 인재(印材)는 남양옥(南陽玉)을 사용하였고, 중전과 왕세자의 옥새도 같이 주조하였다. 태종 , ·세종 때 각 부서의 인장을 부분적으로 주조하였으며, 임진왜란 직후 선조 때 각 관아의 인장들을 다시 주조하였다. 영조(英祖) 때 다시 문란해진 보식(寶式)을 정제하였고, 고종 2년(1865) 대왕 대비전과 대비전의 옥책문제술관 등의 관리를 임명하여 면모를 갖추었다. 고종 13년(1876) 11과의 보인을 개주· 개조· 수보하였고,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를 만들어 전모를 기록하였다.

보인소의궤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에 의하면 보인의 주조에 있어서 참여한 인원은 이조판서와 호조판서를 비롯하여 행정관이 29명, 기술자는 23종의 기술자가 77인이 참여하여 조성된다. 전자관(篆字官)이나 각수(刻手)를 제외한 기술자들의 종목을 살펴보면 화사(畵師)· 보장(寶匠)· 두석장(豆錫匠)·금장(金匠) 은장(銀匠)· 옥각수(玉刻手)· 소로장(小爐匠)· 담편장(擔鞭匠)· 병풍장(屛風匠)· 목수(木手)· 소목장(小木匠)· 조각장(彫刻匠)· 야장(冶匠), 쇄자장(鎖子匠)· 마조장(磨造匠)· 마광장(磨光匠)· 칠장(漆匠)· 호갑장(護匣匠)· 척피장(皮匠) 다회당(多繪匠)· 입사장(入絲匠)· 안자장(鞍子匠)· 매집장(每緝匠) 등이 망라되는 민관 합동 종합예술의 결정이다. 교서관에는 각수(刻手)전자관(篆字官)을 두어, 전자관은 인문을 쓰고 각수는 인문을 새겼다.

보인의 용도

보인의 용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은 왕지나 중국과의 사대문서에 사용하였다. 왕지는 세종 말부터 교지로 바뀌고 여기에 누르는 보인도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에서 시명지보(施命之寶)로 바뀌었다.「조선왕보(朝鮮王寶)」는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 대신에 조선에서 만들어 사용한 국새로 왕지에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인장사진

시명지보(施命之寶)」는 세종 25년(1443) 국왕(國王)의 행보(行寶)를 시명지보(施命之寶)로 고쳐 교지(敎旨)·교서(敎書)에 사용하였고, 「과거지보(科擧之寶)」는 시권, 홍패, 백패 등 과거문서에, 「선사지기(宣賜之記)」는 서적반포와 임금의 각종 하사품에, 「규장지보(奎章之寶)」는 어제(御製)와 규장각 서책에, 「소신지보(昭信之寶)」는 세종 25년(1443) 10월에 국왕(國王)신보(信寶)를 고친 것인데, 사신(事神)· 발병(發兵)· 사물(賜物) 등의 일에 사용하다가, 영조 30년(1765)에 「이덕보(以德寶)」로 개주하여 통신문서에 사용하였으며, 「위정이덕(爲政以德)」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유서지보(諭書之寶)」는 관찰사·절도사·방어사들이 부임할 때나, 명령서인 유서에 사용하였다.

보인의 변화

1894년 갑오경장 후 고종은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종식하여 이전의 대보를 폐지하고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대조선국대군주보(大朝鮮國大君主寶)」 등을 사용하였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국새의 명칭을 바꿔「대한국새(大韓國璽)」는 외교문서에, 「황제지보(皇帝之寶)」·「황제지새(皇帝之璽)」는 포상에, 「제고지보(制誥之寶)」는 고급 관리의 임명에, 「칙명지보(勅命之寶)」는 통신조서에, 「준명지보(濬明之寶)」는 세자시강원용교지에, 「명덕지보(明德之寶)」는 일반 교지에, 「수훈지보(垂訓之寶)」는 후세교육용 교지에, 「광운지보(廣運之寶)」는 황실재산 수송문서에, 「흠문지보(欽文之寶)」는 황제치적 숭배문서에, 「기노소(耆老所)」는 원로 공신문서에, 「준철지보(濬哲之寶)」는 각료 교지에, 「濬哲之寶」·「欽文之寶」·「明德之寶」·「廣運之寶」 등은 각신(閣臣)의 교지에, 「동문지보(同文之寶)」는 복수시행 어보에, 「선사지기(宣賜之記)」는 서적 하사 시에, 「선주단보(宣籌端輔)」는 하사품에 사용하였다. 보인의 규격과 용도, 명칭이 시대와 정치상황에 따라 변하였다. 그리고 종류와 용도 역시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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