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966호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

당나라 때 법등(法燈)이 한역한 지장경은 현세 이익적인 불경으로 우리나라 지장신앙(地藏信仰)의 기본 경전으로 널리 신봉되었으며, 조선시대 세종의 딸인 정의공주의 발원으로 예종 1년(1469)에 목판으로 간행한 불경. 목판본 3권 1책(완본). 구인사 소장. 보물 제966호. 이 불경은 부처님이 도리천(忉利天)에서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을 위하여 설법한 것을 모은 것이다. 부처님은 지장보살을 불러 갖가지 방편으로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상의 육도중생(六道衆生)을 교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과, 죄를 짓고 지옥의 온갖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려는 유명교주(幽冥敎主) 지장보살의 큰 서원(誓願)을 말씀하신 경전이다. 특히, 이 경전에서 지장보살은 한 중생이라도 지옥의 고통을 받는 자가 있으면 성불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중생이 모두 성불하고 난 다음에야 성불하겠다는 원을 보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근거하여 그를 대원본존(大願本尊)으로 신봉하고 있다. 또한 이 경 가운데에는 지옥의 여러 가지 모습이 자세히 설하여져 있고, 부모나 조상들을 지옥으로부터 천도하여 극락에 왕생하도록 하는 데 대한 공덕들이 열거되어 있다. 도리천궁신통품(忉利天宮神通品) ‧ 분신집회품(分身集會品) 등 13품으로 조직된 이 경은 옛날부터 불문(佛門)의 효경(孝經)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를 천도하고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재식법회(齋式法會) 등에서 중요하게 독송되고 있다. 특히, 지장재(地藏齋)의 의식과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명부전(冥府殿)의 구성은 이 지장경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이 경은 지옥의 고통을 파하고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공덕에 근거하여 교학적 측면의 연구보다는 공덕용으로 수많은 판본이 개판되었다. 이처럼 지장보살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노력하여, 죄를 짓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도 평등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큰 뜻을 세운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장신앙(地藏信仰)의 기본 경전으로 널리 신봉되었던 현세 이익적인 불경으로, 원명은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이며, 이를 줄여서 <지장경> 또는 <지장본원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 때의 법등(法燈)이 한역한 3권본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구인사 소장의 지장경은 당나라의 법등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저본으로 1469년에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가 죽은 남편의 명복을 기원할 목적으로 시재하여 간행한 판본이다. 표지는 갈색으로 물 드린 종이에 5침으로 꿰맨 선장본으로 원상으로 보이며, 책의 크기는 31.8cm×20.5cm이다. 표지에는 제첨 형식의 표제가 보이고 있는데, 표제는 ‘지장경(地藏經)’으로 묵서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변상도 2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변상은 석가의 설법장면과 원패, 위태천상으로 그 판각 솜씨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권수의 변상도에 이어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가 보이고, 권수서명이 보이고 있으며, 경제와 품제 사이에 ‘삼장법사 법등역(三藏法師 法燈譯)’이란 역자표시가 기재되어 있다. 각권의 말미에는 <석음(釋音)>이 부기되어 있고, 권하의 <석음> 말미에는 ‘차경출대장비밀경횡자함(此經出大藏秘密經橫字函)’이란 기록이 보이고 있어, 저본을 대장경 ‘횡(橫)’자함에 수록되어 있는 판본을 선정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 뒤에는 김수온이 ‘창용기축(蒼龍己丑)’ 즉 1469년에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능숙한 행초(行草)로 날렵하게 쓰여져 있다. 발문에는 세종의 둘째 따님인 정의공주의 남편인 양효공(良孝公)이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시재하여 <수륙의문(水陸儀文)> ‧ <결수문(結手文)> ‧ <소미타참(小彌陀懺)>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그리고 <지장경(地藏經)>을 판각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발문 끝에는 ‘유치우원찰삼각산도성암(留置于願刹三角山道成菴)’이란 기록이 보이고 있는데, 앞서 발문에서 밝힌 5종의 불경을 목판에 판각한 경판을 정의공주의 원찰인 삼각산 도성암에 봉안케 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시주 정의공주를 비롯하여 ‘성균(性均)’ 등의 시주명이 기재되어 있고, 아래 단에는 ‘권돈일(權頓一)’ 등 8명의 각수 이름이 차례로 기입되어 있다. 이들 각수는 성종연간에 궁중에서 발원하여 간행된 공덕경의 판각에 참여했던 사실이 확인되어, 당대 최고의 판각 기량을 지니고 있던 인물로 생각된다. 판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사주쌍변으로 되어 있으며, 반곽의 크기는 23.7cm×15.5cm이다. 경문의 행 사이에는 계선(界線)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고, 반엽을 기준으로 7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한 항에는 15자씩 배자되어 있다. 중앙의 접힌 부분에 판심부가 있는데, 상하로 대흑구가 보이고 그 사이로 상하 흑어미가 서로 내향하고 있다. 어미 사이에 판심제 ‘지’(地)자가 보이고 그 아래로 권수 및 장수가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판본의 특징과 매우 유사한 점이 느껴진다. 비록 서사자는 확인할 수 없으나, 간경도감판 및 성종연간의 공덕경의 서체와 유사하여 당시 판서자로 활약했던 성임(成任)의 글씨로 보인다. 그래서 자체는 조선전기에 유행한 원나라의 송설체를 방불케 한다. 지질(紙質)은 순수한 저피(楮皮)만을 사용하여 후하게 뜬 상품의 인경지로, 세로로 굵은 발무늬가 드러나고 도침(搗砧)이 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문의 전체에 묵서 구결이 보이고 있으며, 일부에는 각 글자의 좌측에 1내지 3개의 점이 찍혀 있어 주목된다. 이 책은 조선 전기 1469년에 정의공주가 죽은 남편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서 본인 직접 비용을 마련하여 당대의 최고 각수들을 동원하여 판각 간행한 불경이다. 본래 이 판본은 이화균이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현재는 구인사로 이관되어 있으며, 동일본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을 정도로 매우 희귀한 실정이다. 판본의 여러 특징이 간경도감본과 매우 흡사하여 조선 초기 불교판본 연구에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