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불전 내부에는 특정한 문구를 전면에 명시한 세워두는 형태의 패를 나무로 제작하여 봉안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이들은 대체로 좌대를 갖추고 문구가 적힌 장방형의 몸체와 구름 모양으로 조각된 타원형의 개부의 삼단으로 구성되며, 문구의 성격에 따라 불패와 전패 로 유형을 구분하여 사용하였음을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전패(殿牌)의 경우 그 형태는 상부가 옆으로 퍼진 타원형의 상대 아래 화형의 중대가 놓이고 하대 받침을 둔 삼단 구성의 위패형(位牌形)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중앙의 것은 정면관의 용이 표현된 주상전하(主上殿下)의 전패이고 나머지 좌우는 그보다 작은 크기의 왕비와 세子의 전패로서 이를 합쳐 삼전패(三殿牌)라 칭하였다. 이와 달리 불․보살상 주위에 놓아 존명을 새겨놓은 패는 불패(佛牌)라 하여 전패와 구별되는데 형태에 있어서도 상, 중, 하단의 삼단 구분보다 광배형(光背形) 내지는 이단의 화형으로 보다 단순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도 시대가 내려가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어 전패와 불패의 양식은 거의 혼용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앞면의 원문(願文)을 바꾸어 끼울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불전패는 현존하는 가장 이른 예인 통도사 만력34년명 전패(1606)를 시작으로,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 중 가장 많은 수량이 전해지고 있다. 불전패의 제작은 현존사례를 통해 임진과 병자의 양난으로 인해 중창불사와 의식이 성행했던 17세기에 중점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여 18~19세기까지도 꾸준히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
평창 월정사 삼전패는 주상전하수만세 · 왕비전하수제년 · 세자저하수천추 라고 양각한 패액을 하나의 패에 부착한 삼전일체식(三殿一體式)의 삼전패(三殿牌)이다. 전패는 일반적으로 삼전을 각각 구분하여, 3위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그 사례가 적지만 월정사의 사례처럼 1위의 패에 삼전 모두를 축원하는 형식도 일부 확인된다.
삼전을 1위에 축원하는 방식은 1개의 패액에 주상삼전하수만세와 같이 문구로 통합하거나, 삼전 각각의 축원문을 모두 명시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된다. 후자의 경우가 평창 월정사 삼전패의 방식으로, 이러한 형식의 패는 전국에 단 5점만이 확인되어 가치가 높다. 평창 월정사 삼전패는 동일 형식의 5점 가운데 유일하게 명시문구가 양각으로 된 작품으로, 이러한 형식이 변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선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평창 월정사 삼전패는 몸체와 상부가 이중의 원형으로 둥글게 단순화된 당시로서도 약간 독특한 모양의 패로, 운룡문을 저부조로 표현하였고 좌대는 결실된 상태이다. 명시된 문구는 별도로 액을 만들어 끼웠으며, 그 배치는 왕비 · 주상 · 세자로 나타나 일반적인 방식과는 반대로 배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일반적인 패의 형태에서 벗어난 형식이어서 다른 사례와의 비교가 어려우나 도식적인 문양과 단순화된 외형 등은 이 패가 18세기의 늦은 시기나 늦어도 19세기 전반쯤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있다. 비록 조형적인 외형과 세부의 조각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으니 삼전의 축원문을 하나의 위에 모두 명시한 희귀한 예로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