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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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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당

부용정을 내려다보며 당당히 서있는 영화당. 후원의 다른 장소가 정적이고 내밀한 곡선의 세계라면 이곳은 동적이고 분주한 직선의 세계였습니다.
영화당의 방과 기둥, 그리고 들보에는 인조와 선조, 효종, 현종, 숙종 임금의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또 현판은 영조 임금이 지어 올렸으니 한 건물에 여섯 임금의 어필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과연 영화당은 후원의 인정전이라 불릴 만합니다.
지금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가르는 담에 의해 막혔지만 영화당은 널찍한 춘당대와 한 영역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춘당대에서 왕과 신하들은 함께 활쏘기와 연회를 즐겼고 각 지방 예비시험인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임금을 모시고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고대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도 이곳에서 과거를 치르죠. 조선의 젊은 인재들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였나 봅니다.
명종 임금 당시 영화당에서 있었던 활쏘기 행사가 그림 속에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동쪽 처마엔 커다란 베로 짠 차일이 걸려 춘당대 쪽으로 펼쳐집니다. 큰 대나무 가지로 기둥을 삼아 세우니, 나무들이 모두 그 아래로 들어갈 정도로 높았습니다.
영화당 앞에 임금의 자리가 있고 문무백관은 모두 섬돌에 설치한 널마루에 빼곡히 앉아 있네요.
임금은 이날 문신에게 직접 제목을 내려 시를 짓게 하고 무신들은 짝을 지어 활을 쏘게 했습니다.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는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 등을 하사했지요. 기녀들이 춤을 추는 뒤에는 악공 열 명이 나란히 앉아
거문고, 대금, 피리, 비파, 장고 등을 연주합니다. 영조 임금도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종친들을 불러 활쏘기를 하고 은퇴한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잔치를 벌이기도 했지요. 흥겨움이 가득한 영화당의 모습이 상상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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