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유산 의궤정보 소장기관
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소장기관

  • 인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규장각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에는 총 533종, 1,567건 2,897책의 의궤가 소장되어 있다. 이 의궤들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의정부·예조 등 주요 관청에서 참고용으로 사용하거나 춘추관 및 지방의 사고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가 중앙의 여러 관청들과 사고의 소장 도서들을 서울로 이관하여 규장각 도서에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의궤들도 함께 통합되었으며, 이후 경성제국대학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규장각 바로가기
규장각 소장 의궤의 현황 (왕대별)
규장각 소장 의궤의현황 (왕대별) 안내

왕대별 종수, 건수, 책수를 제공합니다

왕대 종수 건수 책수
선조 6 6 6
광해군 19 27 27
인조 32 49 49
효종 12 26 26
현종 15 34 40
숙종 56 115 131
경종 10 20 21
영조 109 214 254
규장각 소장 의궤의현황 (왕대별) 안내

왕대별 종수, 건수, 책수를 제공합니다

왕대 종수 건수 책수
정조 41 92 250
순조 62 200 405
헌종 29 96 187
철종 43 170 349
고종① 54 235 521
고종②(광무) 37 238 586
순종(융희) 8 45 45
총계 533 1,567 2,897

 규장각 소장 유일본 의궤는 모두 116종인데, 왕실 족보 편찬에 관한 기록인 「선원보략수정의궤」류가 53종이고, 그 밖의 유일본이 63종이다. 「선원보략수정의궤」류를 제외한 유일본 의궤들은 제작 연대가 올라가는 선조·광해군·인조 대와 다양한 종류의 의궤들이 제작되었던 영조(英祖) 대에 집중되어 있다. 한편 의궤들 여러 질 편찬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활자로 간행했는데, 현재 규장각에는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비롯하여 모두 13종의 활자본 의궤가 전하고 있다.

규장각 소장 유일본 의궤 (63종, 「선원보략수정의궤」 제외)
규장각 소장 유일본 의궤 (63종,선원보략수정의궤 제외)

왕대별 서명, 도서번호 제공

왕대 서명 도서번호
선조
(6종)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규14845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규14826
선조재존호도감의궤 규14899
[호성선무청난]공신도감의궤 규14924
[호성선무원종삼]공신도감의궤 규14923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규14930
광해군
(13종)
의인왕후존호대비전상존호중궁전책례왕세자책례관례시책례도감의궤
규13196
제기도감의궤 규14931
공성왕후부묘도감의궤 규14939
선조묘호도감의궤 규13244
광해군사친지석개수도감의궤 규14894
[선조·의인왕후]존호도감의궤 규14895
광해조존숭도감의궤 규14891
선조국장도감일방의궤 규14861의1
목릉수개의궤 규13514
[광해군사친]추숭도감의궤 규14880
선조대왕의인왕후부묘도감일방의궤 규13512의1
영접도감미면색의궤 규14551
화기도감의궤 규14596
인조
(13종)
인목왕후존숭의궤 규13245
[원종]예장도감의궤 규13518
[소무녕사]녹훈도감의궤 규14583
[선조목릉]천릉도감의궤 규13515
[선조목릉]천봉도감의궤 규15070
[인목왕후]국장도감의궤 규13516
[광해군일기]찬수청의궤 규14157
영접도감군색의궤 규14577
영접도감연향색의궤 규14579
영접도감응판색의궤 규14578
영접도감잡물색의궤 규14580
영접도감반선색의궤 규14576
[현종]왕세손책례도감의궤 규13067
숙종
(3종)
헌릉비석중건청의궤 규13501
단종실록부록찬집청의궤 규14153
종묘의궤 규14220
영조
(14종)
[효장세자]예장도감의궤 규14875
[사도세자]책례도감의궤 규13108
종묘의궤속록 규14221
열성어제이정갱간시자본사수정의궤 규14201
열성지장수정시본사의궤 규14200
[사도세자]예장도감도청의궤 규13605
수작의궤 규14361
헌릉석물중수도감의궤 규13896-1
정릉표석영건청의궤 규13499
위판조성도감의궤 규14250
악기조성청의궤(1745년) 규14264
대사례의궤 규14941
대보단증수소의궤 규14315
천의소감찬수청의궤 규14206
정조
(3종)
악기조성청의궤(1777년) 규14265
원릉개수도감의궤 규13601
[장조]현륭원천원의궤 규13629
순조
(5종)
악기조성청의궤(1777년) 규14266
순조태실석난간조배의궤 규13968
원자아기씨장태의궤 규13969
성종대왕태실석비개수의궤 규13964
정종대왕태실석난간조배의궤 규13967
헌종
(2종)
익종대왕태실가봉석난간조배의궤 규13970
성상태실가봉석난간조배의궤 규13973
고종
<광무 포함>
(4종)
태조태실개수의궤 규14942
친림정부시의궤 규14944
[고종무진]진찬의궤 규14374
조경전영건청의궤초 고4256.5-1
규장각 소장 활자본 의궤
규장각 소장 활자본 의궤

왕대별 서명, 간년, 소장수량 제공

왕대 서명 간년 소장 수량(건)
정조대 원행을묘정리의궤 1795년(정조19) 18
순조대 화성성역의궤 1801년(순조1) 14
자경전진작정례의궤 1827년(순조27) 3
진작의궤 1828년(순조28) 5
진찬의궤 1829년(순조29) 5
헌종대 진찬의궤 1849년(헌종15) 7
고종대
(광무 포함)
[고종정축]진찬의궤 1877년(고종14) 26
[고종정해]진찬의궤 1887년(고종24) 24
[고종임진]진찬의궤 1892년(고종29) 17
[고종신축]진연의궤 1901년(광무5) 16
[고종신축]진찬의궤 1901년(광무5) 17
[고종임인사월]진연의궤 1902년(광무6) 18
[고종임인십일월]진연의궤 1902년(광무6) 18

 규장각 소장 의궤들은 주제에 따라 36개의 주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가례, 책례, 국장, 존호·존숭, 실록 편찬, 「선원보략」 수정 등과 같이 조선후기 내내 지속적으로 시행된 의례에 관한 의궤들은 모든 왕대에 걸쳐 고르게 남아 있다. 반면 화기 제작, 노비 추쇄, 친경·친잠, 대사례 등에 관한 의궤는 특정 왕대에만 집중적으로 편찬되었는데, 이는 사업이나 의례들이 해당 시기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추진되었음을 보여준다.
 규장각 소장 의궤 중에서 제작 당시의 전체 분상처가 확인되는 것은 모두 316종이다. 대한제국 수립 이전 시기에는 ‘어람, 의정부, 예조, 춘추관, 지방사고 1곳’ 등 5곳에 분상하는 경우와 ‘어람, 의정부, 예조, 춘추관, 지방사고 4곳’ 등 8곳에 분상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이 두 경우를 기준으로 하여 의궤의 주제 및 제작 건수에 따라 분상처를 가감하였다. 5곳에 의궤를 분상할 때 선택되는 지방사고 1곳으로는 강화사고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오대산사고였다. 한편, 의궤의 내용에 따라 특정 기관이 분상처로 지정되는 사례들이 확인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선원록」· 「선원보략」 관련 의궤는 종부시, 「악기조성청의궤」와 연향 의궤는 장악원, 어진·영정 의궤는 진전, 영건 관련 의궤는 호조 등이 분상처에 포함되었다. 또 태실 관련 의궤들은 관상감과 태실이 조성된 도의 감영 및 주현의 관아에 분상되었다.
 1873년(고종 10) 고종이 친정을 시작한 이후부터 세자시강원에 분상되는 예람용 의궤, 즉 왕세자용 의궤가 따로 제작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이전까지의 예람용 의궤는 어람용과 동일한 형태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어람용과 예람용이 구분되지 않는다.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어람용 의궤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 비단으로, 황태자에게 올리는 예람용 의궤는 붉은색 비단으로 표지를 장정하여 구분하였다.
 대한제국 수립 이후의 의궤 분상처는 어람, 예람, 비서감 또는 비서원, 장례원 등 4곳이 기본이었고, 여기에 의궤의 종류 및 제작 부수에 따라 의정부와 지방사고 4곳 등이 추가되었다. 또 융희 연간에는 퇴위한 고종에게 올리는 의궤가 승녕부가 분상처에 포함되었다.
 규장각 소장 의궤 1,567건 중 원소장처가 확인되는 의궤는 모두 1,183건이다. 대한제국 수립 이전의 의궤 중에는 오대산사고본이 203건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강화사고[정족산사고] 185건, 태백산사고 148건, 예조 125건, 의정부 91건, 어람·예람 97건 등이 전해지고 있다. 대한제국 수립 이후 의궤는 어람, 예람, 비서감[비서원], 장례원, 강화사고 소장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반면, 대한제국 이후의 오대산사고본은 5건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이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으로 의궤를 반출할 당시 오대산사고본이 많이 반출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규장각 소장 의궤에는 대부분 관인이 찍혀 있는데, 가장 많이 찍힌 관인은 ‘봉사지인’과 ‘일품봉사지인’이다. 또 의궤의 편찬 기관이나 소장처[분상처]의 관인이 찍힌 경우도 있다. 의궤의 관인은 조선시대 관인 운영의 실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